이용기 회장 소개
롤러코스터 인생…신뢰와 인연이 가장 소중” 에어컨 부품기업 ‘TRUAIRE’사 이용기 대표
아르바이트로 대학 마치고 냉동기술 익혀, 베트남 거쳐 미국으로…한때 알짜배기 부동산 16개 소유
4.29 폭동으로 살던 집까지 차압…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재기의 밑천, 홈디포‘올해의 파트너’로 선정까지…
연간 매출규모 1억 달러로 미 에어컨 부품업계 정상에 오른 트루에어(TRUaire)사 대표인 그는 이렇게 신뢰를 바탕으로 백인 위주의 높은 유리천정을 뚫었다.
그는 한때 올림픽가와 놀만디의 구 서울신탁은행(현 신한은행 입주)을 비롯 로랜하이츠의 구 한국마켓 샤핑센터, 가디나의 코리아 플라자 등 대형 샤핑센터를 소유하고 베이커스 필드의 리오 브라보 골프장을 매입하는 등 한때 한인사회에서 부동산 재벌 소리를 들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한인상공회의소 회장과 올림픽 라이온스 클럽 회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도 벌였다.
그러나 4.29폭동 이후 시작된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로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살고 있던 집마저 차압위기에 몰리는 끝없는 추락을 겪으면서 홀연히 한인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다시 일어났고 20여년만에 백인위주의 미 에어컨 부품업계에 넘버 원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바로 한인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에어컨 부품업체 트루에어사의 이용기 회장이다.
트루에어사는 에어컨 환풍장치 등 빌딩과 주택에 들어가는 에어컨의 모든 부품을 생산, 판매하는 업체로 2012년과 2017년에 홈디포의 ‘올해 최고의 파트너’(partner of the Year)로 두 번씩이나 선정될 만큼 주류 업계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미 업계에서는 홈 디포의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데 수많은 업체 중 ‘Partner of the Year‘로 선정됐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로 보고 있다.
홈디포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업체의 규모와 경험, 제품의 품질과 서비스, 재고와 유통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한다. 한번 선정만 되면 미국내 2,000여개의 홈디포 스토어에 물건을 납품하는 대박이 나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시도하고 있으나 선정되기가 어렵다. 이용기 회장은 “홈디포의 ‘Partner of the Year’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제품의 품질은 물론 서비스, 반품율, 고객의 불만율 등에서 완벽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말했다.
이용기 회장은 “한때 16개의 크고 작은 부동산을 소유했었는데 모든 부동산을 은행에 차압당하고 가족들의 보금자리인 집마저 경매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며 “돌아보면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인생이었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익산이 고향인 그는 부친이 군부대에 육가공을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해 부유하게 살았으나 고등학교 2학년때 갑자기 부친이 별세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그 이후 미 8군부대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냉동기술을 익혀 파월기술자로 월남에 갔다가 1971년 미국으로 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쿨러 엔지니어사를 설립했다. 1980년대 미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건설 붐을 타고 비즈니스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거듭해 부동산 개발에 진출했다.
한때 한인타운의 명물이었던 올림픽가와 놀만디의 구 서울신탁은행 건물을 직접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로랜하이츠 구 한국마켓 샤핑센터 매입, 가디나 코리아 플라자 등 16개의 크고 작은 부동산을 직접 건설하거나 매입했다.
이 회장은 베이커스 필드 리오 브라보 골프장을 매입해 한인들의 골프장 매입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하다.
이 회장은 이같은 비즈니스 성공에 힘입어 40대 초에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LA시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고 한인타운 홍보를 위해 LA 마라톤이 한인타운을 지나가도록 유치하는 등 사회활동을 펼쳤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도 4.29 폭동으로 시작된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 회장은 “90%를 넘었던 사무실과 샤핑센터의 입주율이 폭동이후 60%이하로 떨어졌고 남아있는 업소들마저도 어렵다며 렌트를 내지 않았다”며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렌트가 들어오지 않으니 은행 페이먼트를 할 수없게 됐고 부실대출을 우려했던 은행들은 신규대출은 커녕 감독국의 눈치를 보면서 대출금 회수에 나서 도저히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는 결국 모든 부동산을 차압당하는 추락의 길을 걸었다. 그는 “샤핑센터 등이 차압당할 때 주변에서 파산신청을 해서 조금이라도 좀 건져보라고 권유하기도 했으나 은행이 시키는 대로 깨끗이 차압절차에 따랐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 때 한 점 부끄럼 없이 깨끗하게 던져버린 것이 다시 재기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 담당했던 은행직원들도 내가 파산신청을 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은행이 결정한 대로 차압에 응해주니 좋아하더라”며 “나중에 그 은행직원들이 다시 비즈니스를 한다고 하니까 앞장서 도움을 주더라”고 웃었다.
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버텼지만 가족들의 보금자리인 집이 차압될 때는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집이 경매에 부쳐진 1995년4월1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회장은 “지금 살고 있는 치노 힐스의 집이 그날 샌버나디노 법정에서 경매에 부쳐졌는데 3번의 경매에도 불구하고 응찰이 없어 결국 집이 나한테 돌아왔다”며 “그 당시 나를 포함해서 많은 한인들이 고생을 했다”고 회고했다.
부동산 개발로 얻었던 많은 부동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이 회장은 다시 에어컨 사업으로 돌아와 신용과 정직, 열정으로 오늘의 트루에어사를 일구어냈다.
그는 지금도 1년의 절반을 홈디포를 비롯한 400여개의 크고 작은 홀세일러들을 방문해 바이어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바이어들을 만날 때 하는 말이 바로“I am not selling my products, I am selling my heart”다. 이 회장은 “트루에어의 제품은 나의 분신이다. 나를 믿어라”며 신뢰를 강조한다.
그의 경영철학은 다소 독특하다. 신뢰와 인연이다. 그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신뢰와 인연을 강조했다고 한다. 사람을 믿어서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믿으면 그 사람도 나를 믿는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또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알았다”며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말한다.
그의 소중한 인연은 남다르다.
35년전 구 서울신탁은행 건물을 건설하면서 만났던 이응목 대표와 아직도 동업으로 트루에어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응목 대표는 1,500여명의 직원이 있는 베트남 공장의 생산과 품질을 책임맡고 있고 이용기 회장은 판매와 서비스를 맡고 있다. 이 회장은 이같은 동업성공의 비결을 묻자 “절대 부인을 비즈니스에 간섭시키지 않는 것, 돈에 대해서는 누가 어떤 결정을 하든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며 “그 때마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도움을 주었는데 생각해보면 우연한 인연이라도 소중히 생각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삶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느낀 경영의 노하우를 책으로 엮은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Beyond the American Dream)’를 발간했다.